연름(捐廩)과 나눔리더십

0
1076
<사진> 양옥경 교수

나눔은 지구상의 인류 보편적 개념이자 가치이다. 어의적으로는 하나를 둘 또는 그 이상으로 가르는 것의 의미를 갖고 있으나, 개념적으로는 갈라놓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것을 자발적인 의사를 갖고 사회의 복지향상과 공익을 위해 사회경제적 가치가 있는 자원으로 전환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나누어 놓은 것을 공유하는 것을 핵심요소로 하고 있어, 우애, 배려, 연대의 모습을 연상시킨다. 나누는 자와 나눈 것을 받는 자의 구분을 짓기보다는 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 공동체를 함께 지탱하고자 하는 사회적 책임에 힘이 실린다.

우리는 전통적으로 나눔을 실천해왔다. 계, 두레, 품앗이와 같은 상부상조의 전통은 일상생활에서 실천한 나눔이다. 그런가하면 공동체 유지의 책임으로써 진실한 나눔을 실천하던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자신의 녹봉을 덜어내고 곳간을 열어 주변의 어려운 사람들에게 나누던 사람들이다. 연름捐廩이요 연조捐助이다. 연름은 공공을 위하여 관직에 있는 관리들이 녹봉의 일부를 덜어내어 보태던 일을 말한다. 연은 버릴 연, 름은 곳간 름으로, 쌀광이나 창고에 모아두었던 재물을 버려 나누는 행위를 의미한다.

조선시대에는 자신의 녹봉의 일부를 덜어내어 궁민을 구휼하던 일이 의로운 일로 여겨졌는데, 태종 때 첫 기록 이후 간헐적으로 나타나다 영조와 정조 때 많이 등장한다. 녹봉이란 직무수행의 대가이자 군신간의 의리를 전제로 한 것으로, 천록이라고 여겨지면서 하늘의 뜻이자 공명한 명분과 의리로 인식되었다. 따라서 녹봉의 일부를 자발적으로 덜어내어 나눔으로써 가난한 자를 구제한다는 것은 하늘로부터 주어진 매우 당연한 사명으로 여겨졌다. 좌의정부터 고을 현감까지 녹봉을 연름하여 백성을 구제해 살렸다는 내용이 사료에 자주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이같은 나눔이 보편화된 일이었음을 알 수 있다. “연름捐廩을 풀어 공사公私에 주변하고 있다”는 고을 사또 이야기가 김주영의 소설 「객주」에도 등장하고, 요사이 지극히 곤궁한 처지에 봉착하여 연름의 의를 저버리니 부끄럽고 민망하다는 한 개인의 편지글에도 나타난다. 연름이 관직의 사람들이 한 일이라면, 연조捐助와 의연義捐은 민간에서 자신들의 재물창고를 열어 남을 도와주던 행위를 일컬었다. 수재의연금에서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이같은 나눔의 전통은 우리에게 나눔DNA를 심어주었다. 연말이나 재해 때마다 기부의 행렬이 이어진다. 그러나 한국의 기부 통계를 보면, 2017년, 10명 중 2명만 기부를 하였고, 연평균 50만원 정도 기부하였다. 기부총액은 증가 추세였다고 하나, 기부자의 숫자는 감소하는 추세를 보였다. 또한 자원봉사, 기부, 낯선 사람 돕기의 3개 차원으로 측정하는 세계기부지수the World Giving Index는 139개국 중 62위에 머물렀다. 2009년 81위, 2013년 45위, 2017년 62위로 널뛰기를 하고 있다. 기부에 대한, 그리고 나눔에 대한 우리의 의식 수준을 되돌아보게 한다.

나눔은 지속가능성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크기가 클 필요는 없다. 다만 시민의식과 책임의식에 기반하여 지속적으로 함께 하고자 하는 의식이 중요한 것이다. 연름, 연조, 의연 등으로 본 나눔은 곳간을 채우고 있는 사람, 즉 사회의 리더들이 갖는 공동체의 공익을 위한 책임감있는 자발적 행위였다. 나눔의 리더십을 키워나가야 한다. 나눔의 전통을 책임감있게 살려나가야 한다.


  • 양옥경 (이화여대 교수. 사랑의열매 이사, 나눔연구소 연구운영위원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