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바른 나눔문화 인식을 위한 도서 – 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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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은 어떻게 인간을 행복하게 하는가?

– 모스에서 사르트르까지 기부에 대한 철학적 탐구 –                                        변광배 지음

20세기를 대표하는 지성인 마르셀 모스, 조르주 바타유, 자크 데리다, 그리고 장 폴 사르트르를 통해 기부가 과연 우리에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살펴보자. 기부는 결국 우회된 자기만족이나 미래를 위한 보험같은 이기적인 행위인가? 아니면 나와 공존하는 타인을 위한 진정한 배려인가?

◎ 순수한 기부는 없다 [모스의 기부론]

· 일부 고대사회에서 널리 행해졌던 기부 행위를 총체적인 사회현상으로 보고, 기부 행위를 토대로 이루 어지는 “포틀래치” 라는 고대 의식에 주목함. 이 의식은 한 부족이 다른 부족들과의 관계에서 힘의 우위를 과시할 목적으로 소장품들을 주거나 파괴한 것으로 알려짐.

· 이 행위에는 세가지 의무가 따르는데 그것은 “주어야 하는 의무, 받아야 하는 의무, 답례해야 하는 의무”임. 기부행위 역시 궁극적으로는 답례, 곧 대가를 전제로 하는 일종의 교환에 불과하다는 것이 모스의 견해임.

· 따라서 ‘순수한 기부는 없다’는 것이 모스 「기부론」의 요지임

◎ 기부는 순수해야 한다 [바타유의 기부론]

· 상대방의 답례를 전제로 한 포틀래치, 권력과 우월한 지위를 생산하고 확인하기 위한 포틀래치를 거 부함.

· 포틀래치의 이상은 돌려받지 않는 데 있다. 즉 기부자는 기부를 통해서 무언가 얻겠다는 생각을 버려야 하며, 수혜자 역시 답례의 의무에서 해방되어야 한다.

· 바타유가 원한 건 포틀래치를 넘어선 포틀래치, 즉 ‘절대 순수 기부’임.

◎ 비경제적 행위로서의 기부 [데리다의 기부론]

· 기부가 경제적 교환행위로 환원되지 않으려면 기부자와 수혜자는 서로 주고받는 행위를 기부행위로 인지해서는 안 됨.

· 그렇게 인지하는 순간 양자는 답례를 생각할 수밖에 없고 기부는 교환으로 전락함.

· 데리다가 보기에 기부란 찰나적 순간에만 존재한다. 예컨대 성경에서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명령을 듣고서 번제의 제물로 바치기 위해서 아들 이삭의 몸에 칼을 대려는 순간, 이 ‘절대적 포기’의 순간이야말로 절대적으로 순수한 기부행위의 순간이라는 것이다.

◎ 익명의 기부 [사르트르의 기부론-도덕을 위한 노트]

· 기부행위에서 기부자는 주체로 올라서는 반면에 기부 수혜자는 객체의 위치로 떨어진다. 사르트르가 보기에 그것은 기부의 부정적 측면이자 독성이다. 어떻게 이 독성을 약화시킬 수 있을까. 사르트르의 제안은 기부자의 ‘이름’을 빼는 것이다.

· 기부 수혜자의 주체성을 파괴하지 않으면서 동시에 답례의 의무도 지우지 않는 방책이 익명의 기부다.

· 그럴 때만 기부는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행위로 고양되며, 기부자는 과시적 명예의 획득 대신에 ‘익명의 보람’을 누릴 수 있게 된다.

※ “하나의 공통된 ‘생명’을 가지게 된 공동체를 번성하게 하고, 그 구성원들의 관계를 더욱 친밀하고 돈독하게 하는 것, 이것이 결국 공동체의 도덕성을 고양시키는 가장 빠른 길이 아닐까? 모스가 「기부론」에서 긴 논의를 통해 찾아내고자 했던 것도 바로 이것이 아닐 까 싶다.” -본문 중에서-

♠♠ 이상 네 명의 프랑스를 대표하는 지성인들의 기부에 대한 철학적 탐구를 통해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다. 현대 사회에서 기부자들의 욕구는 다양하며 기부자 개개인의 특성에 맞게 기부를 요청해야 하고, 예우 또한 기부자가 원하는 방식으로 진행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그 기저에 흐르는 변함없는 하나의 원칙은 공동체의 공공선을 향상시키는 방향으로 기부가 진행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기부 행렬에 동참하는 사람들에게는 한결같은 희망과 믿음이 있다고 한다. 바로 나눔이라는 자신의 행위가 세상을 조금 더 아름답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항상 유념해야 할 마음의 자세일 것이다.